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 제국군 (문단 편집) ==== [[프로이센군|프로이센 왕국군]] ==== [[파일:프로이센군기(1816).svg|width=50%]] [[파일:Parade_1894.jpeg.jpg|width=500]] ▲ 1894년 [[포츠담]] 루스트가르텐에서 사열식을 하는 근위군단 소속 제1근위보병연대. 근세 [[척탄병]]들의 미트레(Mitre) 모자를 쓰고 있다. Königlich Preußische Armee. [[프로이센 왕국]]의 군대로, 명실상부한 독일 제국 육군의 맹주이다. [[독일 기사단국]]을 이은 [[프로이센 공국]] 군대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군대를 계승하며, 프로이센이 주도하는 독일 통일의 군사적 주역이다. 제국 육군 병력과 장교단의 절대 다수를 차지했으며, 상술한 대로 프로이센군 전쟁성과 참모부는 곧 독일 제국군 전체의 전쟁성과 총참모부나 다름없었기에 프로이센군이 사실상 제국군 그 자체(Preußisch-deutschen Armee)였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시점에서 총 19개 군단을 보유[* 하술할 작센, 뷔르템베르크군, 바이에른군을 제외한 수치다. 전시편제대로 작센과 뷔르템베르크군을 포함하면 총 22개 군단이 된다.]했는데, 18개 지역군단과 하위 제대들은 관할 지역 출신자들로 충원되었다. 가령 제1군단의 관할 구역은 [[동프로이센]] 일대였다. 반면 [[베를린]]에 주둔한 근위군단은 관할구역이 없었으며, [[프로이센]] 전역과 [[엘자스로트링겐 제국영토]] 각지에서 충원되었다.[* 이 전통은 훗날 독일 국방군의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이 물려받는다.] 규모도 근위군단이 조금 더 컸는데, 독일 제국 군단들은 각각 2개 보병사단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근위군단에는 여기에 근위기병사단 하나가 추가되었다. 기병 부대는 보통 여단 편제로 각 보병사단들 예하에 편제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근위기병사단은 독보적으로 거대한 사단급 기병 제대였다. 그 외 근위군단에는 직할대 숫자도 더 많았다. 근위군단부터 8군단까지는 과거 [[나폴레옹 전쟁]] 막바지인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시기를 전후로 하여 프랑스군의 군단 편제를 받아들여 만들어진, [[프로이센 왕국]]의 오리지널 군단들이었다. 한편 제9군단부터 제11군단까지는 [[북독일 연방]] 시절 [[오스트리아 제국군]]에 대항하기 위해 작센을 제외한 영방국 연대들을 프로이센군이 흡수하여 만든 군단들이었다. [[독일 제국]] 성립 직후에는 바덴 대공국군을 재편한 제14군단과 엘자스-로트링겐을 방위하기 위한 제15군단이 창설되었고,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제국군의 팽창 과정에서 총 제21군단까지[* 이 중 제19군단은 [[작센]] 제2군단이다.] 늘어났다. 하술할 세 영방국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군대는 전부 프로이센군에 흡수되었다. 지역별로 모집되던 특성 상 각 연대별 역사와 전통, 군기는 계승되었으나 그 지휘권이나 장비 등의 독자성은 완전히 프로이센군에 종속되었다. 가령 [[헤센 대공국]]의 군대인 제81보병연대(헤센 선제후국 제1연대)와 제80퓨질리어연대는 42보병여단을 구성하여 나사우 공국 출신의 41보병여단과 함께 프로이센 21사단에 속했다. 그리고 [[올덴부르크 대공국]]의 군대는 제91올덴부르크 보병연대와 제10야전포병연대, 제19올덴부르크 기병연대로 나뉘었고, [[하노버]] 지역의 연대들과 함께 제국군 제19사단을 구성하는 식이었다.[* 참고로 [[독일 연방]] 시기에 올덴부르크는 [[브레멘]], [[함부르크]], [[뤼베크]]와 연합한 올덴부르크-한자 여단을 운용했었다. 여단 해체 이후 각 자유시들의 군대 또한 출신지역 이름을 단 연대로써 프로이센군에 흡수되었는데, 이들 자유시들에 기반한 연대들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 기반한 프로이센군 연대들과 [[메클렌부르크]] 대공국들의 연대들과 함께 17사단을 구성했다.] 다만 하노버 지역의 연대들은 [[하노버 왕국]] 군대에서 기인했으나, 프로이센 주도의 제국에서 그 역사를 인정받지 못했다. 프로이센이 하노버를 점령해 멸망시키는 바람에 양국 왕가가 적대관계였기 때문이다. 하노버 연대들은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빌헬름 2세]]의 허락를 얻어 과거의 전통을 공식적으로 이을 수 있었다. 그 외 인구가 너무 적어 대대 정도의 군대밖에 꾸리지 못하는 소국들은 주변 소국들의 대대들을 모아 함께 연대를 꾸리거나 프로이센 연대들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가령 제7 튀링겐 보병연대(독일 제국군 96보병연대)의 경우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과 [[로이스그라이츠 후국]], [[작센알텐부르크 공국]]의 대대들이 모인 부대였다. 프로이센군에 완전히 흡수된 가장 큰 영방국 군대는 [[바덴 대공국]]군이었다. 1개 군단 규모였는데, 그대로 제국 육군 제14군단으로 편입되었다. 바덴의 자체적인 전쟁성 또한 1871년 12월 27일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프로이센군에 흡수된 후의 역대 14군단장들 또한 한 명을 제외하면 전부 프로이센인이었다. 유일한 예외는 테오도어 폰 바터 중장인데 그마저도 바덴이 아니라 뷔르템베르크군 출신이다. 다만 기원도 기원이거니와 지역 군단인 독일 제국군 군단들의 특성 상, 프로이센군에 흡수된 이후에도 제14군단은 바덴인들로 구성된[* 단, 프로이센의 [[호엔촐레른]] 주를 기반으로 하는 제40퓨질리어연대만은 예외다. 이 연대는 지역적인 인접성 때문에 제14군단의 28사단 소속 제55보병여단에 배속되어 바덴군과 함께 움직였다.] 바덴을 지키는[* 다만 39사단과 29사단 소속 부대들 일부는 알자스-로렌 남쪽 끝자락도 관할했다.] 부대였다. 그 외 작센과 뷔르템베르크의 군대들도 전시에는 프로이센과 제국 육군의 편제에 속하였다. 바이에른군만 많이 예외였다. 작센군과 뷔르템베르크군은 자신들만의 고유 번호 외에도 프로이센군 소속으로서의 번호를 부여받았다. 다만 이들은 독자적인 전쟁성을 가지고 평시 군령, 군정권을 유지했으므로 바덴과는 달리 독자성을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